주의! 이 글은 그닥 궁금하지 않을 수 있는 홈페이지 주인 소개를 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꿈보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아 나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 나에게 예고를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던 나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통해 예술의 길로 걸어가게 됐다.
그 전까지 나는 수학 과학을 잘하고 좋아해서 공대를 다니던 사촌오빠의 영향으로 대충 공대를 가겠거니 라고 생각했고, 뚜렷한 꿈은 없었다.
그런데 친구가 예고를 얘기했고, 집에서 너무 쉽게 허락을 해주는 바람에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되기 전 곧바로 예고 준비를 했다.
아마도 엄마의 못 이룬 꿈을 내가 이루길 바라셨던 것 같다.
예고를 늦게 준비한 만큼 그림 실력은 부족했지만 공부는 그럭저럭 했었어서 사실 공부 성적으로 예고를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억지로 하는 공부가 너무 싫었던 나는 공부 대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신났었고,
둘 중 하나를 뚜렷이 잘하지 못했던 나는 결국 공부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는 애가 됐다.
대학교를 여기저기 지원해봤지만 다 떨어지고 결국 담임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하셨던 어떤 학교에 흥미를 가졌고, 내 전공 디자인과는 길이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과였는데 재수는 도저히 자신이 없으니 그냥 대학부터 가자는 마인드로 그 학교에 지원했다. 그 당시에 대학은 거의 필수처럼 느껴졌으니.
애니메이션과였지만 애니메이션에는 영 흥미가 없던 나는 주로 촬영 쪽 수업을 듣거나 타과 전공을 듣기도 했고,
졸업할 즈음에는 이 그림 실력으로 돈 벌기엔 도저히 무리겠다 싶어 3D 쪽을 기웃거렸고,
인테리어디자인을 하신 교수님의 영향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3D 수업을 들었다.
당시 선배들이 많이 가던 3D 영화/애니메이션 회사가 있었는데 뭔가 멋져 보였다.
큰 회사에서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스페셜리스트로 일한다는 것도.
그때 부산에는 그런 회사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를 너무 가고 싶었지만 인테리어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회사에서 애니메이션 교육을 시켜서 인턴으로 채용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대학 다닐 때도 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지원했다.
지원을 하기로 결심한 날, 이상하게도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가고 싶던 회사에 지원하기로 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해본 적 없던 애니메이션을 하게 되어서?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 같아서 설레었을까?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아 밤을 꼬박 새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무의식 중에 내가 13년째 이 일을 할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그때만큼 설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진짜 열심히 배웠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내 자신에게 속죄하는 마음을 가지며 진짜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자고 먹고 씻는 등 필수적인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엔 무조건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도 시간이 아까워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고, 회사에서도 교육이 끝난 뒤에도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고, 집에 가서 또 공부를 하다 잠들었다.
회사는 결국 망해서 우리의 인턴 채용은 물 건너갔지만, 그렇게 배운 덕분에 서울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일하던 중에 망했던 그 회사가 되살아났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내려와서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 꿈에 그렸던 곳에서 일할 때, 물론 힘든 점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거의 행복한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가장 행복한 회사 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게임업계에 있는 사람들을 좀 알게 됐고, 그 당시에 영화회사와 게임회사의 연봉과 복지 차이가 꽤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돈을 좀 더 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게임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게임회사에서는 신입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또 나름 열심히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면서 나는 결국 게임보다 영화 작업이 더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해외 영화 회사 취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사실 언어뿐만 아니라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쉽지 않은 길이라 오랫동안 꿈으로만 접어두고 있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해외 취업에 성공한 친구를 보면서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포트폴리오를 좋게 봐줬는지 큰 회사들에서 인터뷰 제안이 왔었다.
하지만 수능 영포자였던 나는 인터뷰 때 거의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다시 영어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렇게 꿈이 무산되나 싶었던 무렵에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너무 운이 좋게도 인터뷰를 보기 전부터 채용이 거의 확정되다시피 하고 인터뷰를 봤기 때문에 긴장을 좀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헐리웃 영화 CG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여러 회사들을 거쳤고, 중간에 AI로 인한 헐리웃 작가 파업 때문에 8개월간 공백기도 있었고, 지금은 다시 또 일하며 지내고 있다.
여전히 영어는 못해서 우당탕탕 해외생활이지만 그럭저럭 7년째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엄마.
중학교 친구.
담임 선생님.
교수님.
선배들.
해외 취업한 친구.
…
돌이켜보면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온 길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들이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어쩌면 이 홈페이지도 그런 우연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2026.07.02-

💭 나머지 혼잣말 모음






돌이켜보면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온 길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들이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결국 여러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완성된 나니까 굳이 내 선택이 아니었더라도 결국엔 내가 선택한거죠 뭐!
헤헤 그렇게 볼 수 있죠! 감사합니다
온유님이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온 길이 많지 않다고 표현 하셨지만, 다 온유님께서 스스로 갈고 닦은 시간들로 읽히네요. 중간에 다른 길로 틀 수도 있었고, 주저 앉을 수도 있을 법한 외력이 있었음에도 자신을 믿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신 온유님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우와..lala님..! 좋게 봐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응원도 감사합니다!🧡 삶에 늘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랄게요🍀💚